결국 한 선원이 재물로 결정이 되었고, 나머지 선원들은 동료선원의 육신을 뜯어먹으며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나간다.
고래잡이로 일확천금을 얻던 19세기, 넌텐컷이라는 섬은 이른바 포경업의 중심지였다. 미국동북부에 위치한 이섬 출신의 어부들은 1-2년간 태평양을 횡단하는 고독한 바다생활을 통해 고기를 잡아들였고, 부를 쌓았는데 특히 고래 중 향유 고래는 엄청난 기름을 보유해 고래잡이에 나선 어부들은 이 고래를 잡기 위해 혈안이됐다.
그러나 넌텐컷 출신들로 구성된 에삭스호는 출항 1년 후 태평양 한가운데서 자그마치 몸무게가 80톤에 이르는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전복되고 살아남은 어부들은 손바닥만한 보조선에 목숨을 의지한채 하루하루를 연명해 나간다. 그러나 허기에 지친 이들은 먹을 것이 바닥나자 동료들의 육신을 뜯어먹으며 생명을 연장해 나간 것이다.
에삭스호 선원들이 동료를 잡아멱으면서 생명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고래잡이의 참혹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소설 백경보다도 에삭스호 선원들의 체험기는 처참하기 그지 없다.
최근 고 정몽헌 회장이 자살을 했다.자살을 통해 죽음에 이른 정회장의 종말은 생전에 그가 어떤일을 했던간에 숙연한 하나의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어디까지나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탄생은 축하해줄 일이요, 죽음에 대해선 숙연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회장이 죽음을 맞이한 정치권은 너탓, 내탓을 내용으로하는 성명전으로 일관했다. 여론의 불똥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이들의 행위는 서글픈 일이었다. 우리의 정치권은 어디까지 가야 국민의 존엄성을 먼저 생각하는 공인의 자세를 갖출 것인가.
정회장의 죽음과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문득 고래잡이에 나섰다가 표류하게된 에삭스 선원들의 생존싸움을 연상하게 되는 현실이 슬프다.